아주 어렸을 때부터 생각해왔던 것이 있다. 꼭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주인공에게 사건이 벌어질때 주인공의 깜짝 놀라는 표정-사건의 전개 로 장면전환이 되는 것들을 보면서 저 사이에 주인공의 심정과 과정은 어디로 갔을까. 내가 사고를 치면 엄마한테 혼나기 전까지 그 시간이 너무 고통스러웠는데 왜 영화나 드라마는 그런 장면이 없을까 고민했었다.
최근 보게된 드라마의 주인공은 전작이나 현재나 현실에서는 보기 힘든 치렁치렁한 모리룩을 챙겨입고 나온다. 매 드라마마다 저런 스타일을 고수하는게 신기해서 언니에게 이야기 했더니 어떤 사람들은 드라마에서만큼은 현실에 없는 것들을 바란다고 주인공이 너무 현실적으로 목 늘어난 티에 PINK 츄리닝을 입고 나오면 시청자 게시판에 항의글이 올라온다고 했다.
사람이 살면서 문제가 생기면 그것을 인지하고 해결하는 과정에서 드라마 그 이상의 고통이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있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이 아닌 곳에서만큼은 잊어버리길 간절히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못생겼다고 나오는 여주인공이 사실 엄청나게 예쁜 배우인 것도, 대체 저걸 어떻게 입지 하는 스타일도, 말도 안되게 좋은 자취방도 어쩌면 그렇기 때문일수도 있다.
이번 주말에 첫 직장의 첫 휴가를 내고 혼자 비행기 티켓을 끊어 제주도에 다녀왔다. 제주도에 연고가 아주 없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이전 아르바이트 동료들이 제주도 전시를 위해 가있었기 때문에 어쩌면 무모하지만 혼자서 출발했고, 잘 도착했다. 퇴근 후에 타야하는 비행기라 저녁 비행기를 잡았더니 정시에 출발한 적이 없다는 유명한 제주비행은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자동으로 밤비행기로 딜레이되었고 제주에 도착했더니 이미 열시에 가까워오고 있었다.
친구들을 만나기 전에 체크아웃을 하라는 게스트하우스 주인의 전화에 게스트하우스에 먼저 들렀고 조용하지만 일찍 자는 폴란드 아가씨들이 있는 4인실과 잘 놀기때문에 지금도 나가있다는 브라질 아가씨들이 있는 4인실 중에 고르라고 하여 '저도 늦게 들어올건데요....' 하면서 브라질 아가씨들의 방에 짐을 풀었다.
오랜만에 보는 예쁜 동생들과 왜인지 경리단길에 있는 맥파이를 제주에서도 맛보게 되었고 워크샵을 온 회사 테이블 옆으로 왠지 우리도 워크샵처럼 앉게 되었다. 재밌게도 여전히 속이 상하지만 여전히 아닌 척 하느라고 바빴고 후딱 맥주를 마시고 얼굴을 맞대며 근황을 묻다 바닷가로 나갔다. 여전히 상황은 똑같았고 그 여전함에 예전처럼 마음이 아리기도, 우습기도 했다.
재밌게도 내 표정과 그 사람의 표정은 여전히 같았다. 그 여전함이 여전히 우스웠다.
아닌 밤중에 온갖 감정을 또 뒤집어 쓰고 나니 여기 왜 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직원 숙소로 동생들을 보내고 게스트하우스에 돌아왔더니 브라질 아가씨들은 몸에 예쁘게 새긴 문신과 화려한 머리색이 주는 편견과 너무나도 다르게 조용하고, 매너있게 일찍 잠들었다.
다음날은 렌터카를 빌려 아침에는 아버지가 사시던 옛 동네에 갔다가 점심을 먹고 중문으로 출발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도통 동생들에게 연락이 오지 않아 조식을 먹고 게스트하우스 안의 여행객들이 모두 여행을 떠난 후에도 게스트하우스에 머물러야 했다. 심지어 주인마저도 산에 다녀오겠다며 카메라를 둘러맸지만 나는 커피나 한 잔 더 마셔야만 했다.
같은 회사였다면 씩씩하게 숙소까지 가서 빨리빨리 하라며 호통쳤겠지만 객이 된 입장에서 어제까지 일한(정작 나도 그랬지만) 동생들에게 빨리 일어나라고 할 수 없어서 12시까지 게스트하우스의 고양이와 시간을 보냈다. 아이들은 렌터카를 픽업해서 숙소 근처에 도착했고 마침 동생 중 한명이 사랑니의 실밥을 제거해야 해서 점심을 먹고 잠시 병원에 들렀다 중문으로 바로 내려가기로 했다.
제주도에만 있다는 중식 체인에 가서 짜장면을 먹고, 근처의 카페에서 커피를 시켰다. 치과에 간 동생을 데리러 간 그녀의 남자친구에게 전화가 오기 전까지는 어쩌면 오늘 즐거울수도 있겠다 생각을 했다.
10분을 뛰어 찾아간 치과 빌딩에는 사람들이 몰려있었고 구급차도 함께 서있었다. 사랑니 실밥을 뽑기로 한 동생은 목에 보호대를 하고 응급처치를 받고 있었고 차는 뒤집어져 있었다.
어쩌면 나는 그 순간 드라마처럼 눈 깜빡하는 사이에 장면이 전환되기를 바랐을수도 있다.
드라마와 현실이 같지 않다는건 누구나 안다. 여주인공의 현실을 넘어선 외모보다, 말도 안되는 스타일보다 드라마에게 더 부러운건 정해진 결말이 있다는거다. 적어도 작가는 결말을 알고 있고, 그 결말을 향해 달리는 중에 잠시 넘어지고야 마는 것을 보여주는 드라마는 절대 현실이 될 수 없다.
다행히 사람은 다치지 않았지만, 사람 이전에 태어났다던 돈에 관한 문제는 어쩌면 눈 깜짝한 사이에 절대 끝날 수 없는 문제가 되었다. 어린 동생들은 너무 어린 나이에 말도 안되는 빚을 떠안게 되었다. 그들의 부모님 외에는 모두 자신을 타자화시켰고 자신의 문제가 아니니 조금 더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고야 말았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이 해 줄 수 있는 말은 단지 돈이 중요한게 아니고 사람이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다 라는 말 만 반복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정작 동생들에게 직면해버린 고통은 엄청난 수리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데 말이다.
너무 많은 죄책감과 고통 그리고 후회들이 뒤섞여버린 금요일이 되어버렸다.
정말로 타자가 되어버린 나는 다음날 아침 제주도를 나오면서 해줄 수 있는 위로라고는 밥은 잘 먹었냐, 잠은 잘 잤냐 밖에 없다는 사실에 무능함을 느끼면서 동생들을 두고 첫 휴가를 마치고야 말았다.
아주 철없이 행복하고 싶을 때가 있다. 결국에는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그 배우의 드라마 필모그래피처럼 내가 생각하고 꿈꾸는 것은 그런 것인데, 현실은 절대적으로 용납하지 않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는 드라마처럼 건너뛰기, 장면 전환은 상상도 할 수 없다는 거다. 어찌되었건 모든 고통을 책임져야 하고 간신히 책임진다 해도 결과가 어떻게 변할지는 우리들은 모르니까.